목회칼럼 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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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드워터한인교회Jan 01.1970 야곱의 3단계 변화
      야곱은 영적으로 3단계의 변화가 있었다. 1. 야곱의 단계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창 25:26a). 야곱은 이스라엘의 삼대 족장 가운데 한사람으로 그 이름의 뜻이 ‘발뒤꿈치를 잡음, 거짓말쟁이, 사기꾼’인 것 같이 육신에 속한 자로 정욕적이고 탐심에 따라 살았다. 야곱의 단계란 인간의 죄많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7-8).   2. 이스라엘의 단계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 니라”(창 32:28).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겨루어 얻은 이름으로 그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하나님의 전사’이다. \야곱이 최후까지 의뢰하던 인간적인 것의 꺾임으로 중생한 신앙적, 고백적인 이름이다. 영에 속한 자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성령의 사람이다.   3. 여수룬의 단계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사 44:2). 여수룬은 야곱이나 이스라엘이란 말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적으로 표현한 이름으로 그 뜻은 의로운 자(곧은 자)이다. 보통 이스라엘의 애칭으로 사용된 이 이름은 의로운 이스라엘을 말할 때 사용된 시어로서 도덕적이고 영적인 특징을 가진 이상적인 민족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참다운 신앙인의 단계를 의미한다.   043023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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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드워터한인교회Jan 01.1970 사도 중에 첫번째 순교자 야고보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8-19).   야고보의 아버지 세베대는 갈릴리 해변에서 몇 사람을 두고 어업을 하는 어부였고 야고보 자신도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그리고 야고보의 동생은 요한이었는데 이 요한도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한사람으로 예수님에게 충성스럽게 봉사하였다.   이 야고보와 요한의 형제 두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셨는데, 그 뜻은 우레의 아들 이라는 것이었다(막 3:17). 이와같이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그들의 성격이 과격하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태복음 4:22, 마가복음 1:20에 보면 야고보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아버지와 삯군과 배를 다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왔다. 야고보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왔다. 아버지를 버렸으니 부모와 형제와 친척을 다 버린 것이었다. 삯군을 다 버렸으니 모든 친구를 다 버린 것 이었다. 그리고 배를 버렸으니 이것은 모든 재물을 다 버린 것이었다.   야고보는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섰다. 주를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 사도행전 12:1-2에서 “그때에 해롯왕이 손을 들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라고 하였다. 해롯왕의 손에서 칼로 죽어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잡히실 때에는 좀 비겁하게 도망을 가기까지 하였으나 이제는 피하지 아니하고 용감하게 순교를 하였다.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기록에 의하면 순교할 때에 야고보가 얼마나 용감하고 얼마나 거룩하였는지 야고보를 죽이던 한 형사도 크게 감동을 받아서 당장에 예수를 믿고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죽으면서 전도하였다. 죽음으로 전도하였다. 순교를 전도로 장식하였다.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 예루살렘에 안장되었으나, 그 후 스페인의 콤보스텔라에 이장되었고, 알폰소 왕은 그 묘지 위에 웅대한 교회를 건축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례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야고보는 또한 영국 근처에서는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영국의 수많은 교회가 야고보를 기념하여 봉헌되었다.   042323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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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드워터한인교회Jan 01.1970 전도서의 행복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행복추구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물질(돈)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라고 말할 것입니다. 전부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행복에 대해 깊이 성찰한 사람들은 돈보다 훨씬 중요한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교수는 행복의 조건으로 크게 세가지를 제시 했습니다. 1)       낙천적인 인생관을 갖는것, 2)       가까운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을 주고 받는것, 3)       일의 종류와 상관없이 성취감을 느끼며 일하는 보람등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3000년 전에 살았던 솔로몬은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려 보았던 사람으로서 무엇이 진정한 행복의 열쇠인지 우리에게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우선 ‘헛되다’는 표현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닌것들을 말합니다. 그는 경험상 명예나 권력, 부와 같은 것은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식도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전1:18) 재물도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부요함은 근심을 더해 줍니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전5:12)   그럼 무엇이 행복의 조건이 될까요? 행복은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 행복이 들어 있습니다. 가족과 가까운 이웃,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무슨 거창한 일을 해야 얻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보람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에서 찾지 말고 관계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 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2:24)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도 또한 알았도다.”(전3:12-13)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전3:22)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전5:18) 041623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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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드워터한인교회Jan 01.1970 부활의 역사적 증거 4가지
      예수의 부활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들,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역사적 사실이 4가지 있다.   첫째 사실은 '예수은 십자가에서 죽어서 무덤에 묻혔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 처형 이후 죽어서 아리마대 요셉의 개인 무덤에 묻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예수님의 무덤 위치가 알려졌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산헤드린 공회 의원 중 한 사람인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혔다는 사실은 당시 제자들에게는 불리한 증언이었다. 그럼에도 사복음서가 일관되게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 증언이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했다.   둘째 사실은 '예수의 무덤은 빈 무덤으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빈 무덤'은 부활의 강력한 증거인데, 이를 지지하는 증거는 ①각각 다른 전승을 가진 사복음서 모두가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음을 증언하고 ②바울 이전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경(Creed, 고전 15:3-8)이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으며 ③복음서는 빈 무덤의 최초 증인으로 여인들을 내세우고 ④1세기 당시 유대인들과 권력자들은 예수 무덤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무덤이 비어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다 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셋째 사실은 '개인과 그룹이 여러 번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본 경험을 했고, 그 사실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을 증언하는 기록은 ①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요 20:10-18, 마 28:8-10) ②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눅 24:13-32) ③열한 제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눅 24:33-49) ④도마를 제외한 열 사도와 다른 사람들(요 20:19-23) ⑤도마와 다른 사도들(요 20:26-30) ⑥제자들(마 28:16-20) ⑦승천하기 전 감람산에서 사도들과 함께(눅 24:50-52, 행 1:4-9) 등이 있다.   넷째 사실은 '예수의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를 만난 경험 때문에 삶이 급격하게 변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누구도 예수 제자들의 급진적 변화에 대해 부인하는 사람이 없다"며 "제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기전 그를 떠났고 심지어 그를 부인하기까지 했으며, 당시 유대인의 보편적 메시야 사상에 의하면 메시야는 죽지 않아야 했기에 그들은 혼란 속에 있었다.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유대교 사상은 마지막 날 부활 전 그 누구도 부활할 수 없다고 믿었기에,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고 그 사실을 믿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040923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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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
    타이드워터한인교회Jan 01.1970 십자가의 다섯 가지 상징
      온 세계의 교회의 종탑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사형틀로서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십자가는 저주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죄값을 다 청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거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둘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의 증거가 십자가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패배와 실패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이 없습니다.   넷째, 십자가는 치유의 상징입니다 인간은 죄로 물들어 영혼이 병들었습니다.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절망적인 모습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병든 영혼의 죄를 씻어주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다섯째, 십자가는 소망의 상징입니다. 인간은 십자가의 구원을 통하여 천국의 소망을 갖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인류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고난주간 동안 십자가를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040223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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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드워터한인교회Jan 01.1970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있는 곳이 선교지이다.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한 나라에서 한 목사님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훈련과정을 거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해보기도 전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감옥을 자신의 선교지로 주셨다고 믿었다. 그는 그 안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를 찾았다. 그 사람은 너무나 잔인해서 그 감옥의 간수들조차 두려워했다. 감옥에서는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하고 다 지쳐서 잠을 자지만 그 목사님은 침대에서 내려와 마룻바닥에 엎드려 그 살인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동료 죄수들은 그 살인자는 변화가 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밤에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살인자가 다가왔다. 그 살인자는 다들 자신을 두려워하고 관심도 없는 데 자신을 위해 밤마다 기도한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멈추지 않고 계속 기도를 계속 하니 목사님을 한번 만나보기를 작정한 것이다.   살인자는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양반 밤마다 잠을 안자고 뭐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보다시피 기도하는 중이오”라고 그가 대답하자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중이요.” 하면서 그가 되물었다. “바로 당신을 위해 밤마다 기도하고 있었소”라고 대답했다. 그 살인자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은 목사님이 처음이라며 미침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 살인자는 그날부터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그 소문은 교도소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침내 교도소 소장이 도 대체 그 살인자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묻기 위해 목사님을 불렀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그를 위해 기도했을 뿐이고 그를 변화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있는 바로 그곳이 선교지이다. 032623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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